이 논문은 시인 김병학, 이 스따니슬라브, 최석, 김 블라디미르의 시를 통해 현재 고려인이 처한 ‘뿌리에의 욕망’의 지속적 좌절과 그로 인한 소외와 고립감, 고향 연해주에 대한 이상화, 현대에 이주한 한국인이 느끼는 중앙아시아 고려인과의 문화적 언어적 거리, 귀화한 고려인으로서 한국에서 느끼는 배제와 차별 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4명의 시인들의 시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것은 이주 10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고려인들은 뿌리를 내릴 삶의 안전지대로서의 장소를 갖지 못한 채 장소상실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려인의 비극적인 이주 역사 때문이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이주하여 연해주에 정착하고자 했지만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되었고, 그 후 소련국민으로서 적극적 동화를 추구했지만 소련의 해체로 다시 집 없는 존재가 되어 재이주를 해야 하는 비극적 운명에 처해진다. 즉 고려인들이 집중 거주해온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의 독립은 고려인을 한순간에 뿌리가 없는 사실상의 무거주자로 만들어버렸다. 따라서 그들의 뿌리에의 욕망은 늘 좌절되고 지연되며 아직도 이주는 계속되고 있다.
이 논문은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의 인본주의 지리학(humanistic geography)에서 관심을 가진 장소와 장소상실의 문제를 고려인의 ‘뿌리에의 욕망’이란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렐프는 장소를 인간 공동체로서 뿌리를 내리고, 그곳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세계와 관계를 맺는 인간 실존의 근원적 중심으로 파악했다. 장소는 아이덴티티의 문제와도 깊은 연관을 맺는다. 따라서 본고는 고려인의 장소상실과 아이덴티티 문제를 연결하여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