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러시아 인쇄산업의 발전은 알렉산드르 2세 통치기에 시행된 이른바 ‘대개혁’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전제정부의 개혁 정책으로 러시아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가 추동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개혁기 러시아 인쇄산업의 변화 양상을 고찰하고, 이를 통해 당대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확산’ 여부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 시기에는 전사회적 계몽운동과 정부의 개혁정책으로 인쇄물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러시아 내 인쇄시설의 수가 대폭 증가했고, 인쇄분야에서 신기술과 기계 도입이 뒤따랐다. 농노제 폐지로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인쇄산업 분야에서도 고용노동이 기존의 노동 형태를 대체해 나갔다. 러시아 인쇄산업의 기계화 과정은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부단히 진행됐다. 인쇄 기술과 설비의 진보는 러시아 인쇄산업의 집중화를 가져왔다. 기술 혁신에 편승하지 못한 소규모 인쇄소는 경쟁에서 도태됐다. 경쟁력을 확보한 대형 인쇄기업, 이른바 ‘티폴리토그라피야’는 도서 출판과 유통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출판시장에서 소규모 도서 유통업자들이 퇴출되고, 유통 자본의 독자적 생존은 중단됐다. 개혁기 러시아 인쇄산업의 집중화에는 정부의 역할도 크게 작용했다. 정부는 대형 인쇄기업 육성을 통해 사회 내 친정부적 토대를 공고히 하고, 러시아 인쇄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했다. 시장 내 치열한 경쟁과 정부 지원을 통해 성장한 일련의 ‘티폴리토그라피야’는 러시아 인쇄산업의 선순환구조를 구축했다. 이들의 성장 과정은 ‘산업 집중화’에 다름 아니며, 러시아 사회의 ‘자본주의적 변화’를 명징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