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인공지능 기술은 단순한 자동화 기술을 넘어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여 상당한 수준의 자율성과 일정 범위에서 인간과의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멀리 그리스의 오토마타(automata)와 유대의 골렘(Golem)까지 이어지는 낭만적 세계관과 결부되어 인공지능에게 일종의 주체성을 인정할 수 있을지 여부에 관한 담론이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법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논의는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부여할 것인지 여부의 문제가 된다.
이 문제는 속성 기반 접근법과 관계 기반 접근법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해볼 수 있다. 먼저 속성 기반 접근법은 인간에게 법인격이 인정되는 근거가 되는 속성을 인공지능 역시 지니고 있는지 여부에 관심을 둔다. 칸트 이래 근대 법학은 합리적 이성과 자유의지를 법인격의 초석으로 삼고 있다. 여러 학문의 발전으로 인간의 이성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인과율을 초월한 것은 아님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토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현 단계의 인공지능은 주어진 과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합리성을 지니며 인간의 개입이 최소화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자율성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도구적 의미를 지닌 것에 불과하여 법인격 인정의 근거가 되는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지와 같은 선상에서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혼 내지 정신, 의식, 또는 감정과 같은 속성에 주목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현 단계의 인공지능은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다만 기술의 발전으로 장차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이른바 강인공지능이 출현한다면 속성 기반 접근법은 종족 중심주의를 취하지 않는 한 인공지능에 대한 법인격 부여를 요구하게 될 지도 모른다.
관계 기반 접근법은 무언가에게 법적 주체성이 인정될 것인지 여부를 그것이 지닌 속성보다는 다른 주체와의 관계에 의하여 판단하려고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법인격이 인정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인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법인격이 인정된 경우도 있었다. 오늘날 법제도에서 중추적 기능을 하는 법인 역시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법인격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현실과 법적 편의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먼저 사회적 현실의 측면을 보자면 현 단계의 인공지능이 기존의 법인격 주체들에 의하여 하나의 법적 주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처럼 사회적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 법적 편의성 유무와 관계없이 법인격 부여는 불가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에 대한 법인격 인정은 책임 귀속을 용이하게 하는 등의 일부 이점에도 불구하고 이를 능가하는 위험과 비용을 초래하므로 법적 편의성이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 책임의 적정한 귀속은 다른 법리에 의하여도 가능한 반면, 제도적‧물적 기반을 갖추기 위하여 상당한 비용이 들고, 혁신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으며, 무엇보다 기존 법질서에 미치는 충격이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에 대한 법인격 부여는 현 시점에서는 시기상조라고 할 수 있다. 장차 강인공지능이 도래할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온다고 하더라도 인공지능에 대한 법인격 부여에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