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에서는 1963년 설립되어 자동차 사고로 인해 존 록펠러 3세(John D. Rockefeller 3rd)가 급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1978년까지 지속한 록펠러 3세 기금 (JDR 3rd Fund)을 중심으로 록펠러 재단이 한국미술계를 위해 펼친 지원사업의 양상과 특징에 대해 살펴본다. 록펠러 3세 기금은 미국과 아시아 사이에 시각예술과 공연예술 분야 문화교류 지원을 위해 1963년에 설립된 기구로서 록펠러 아카이브 센터에서 검색한 자료를 토대로 미술 분야에 한정해서 한국의 미술가와 학자가 수혜를 받은 사례를 살펴보면 회화/조각 분야에 김창열, 윤명로, 최만린, 김환기, 김차섭, 김병기, 박종배, 미술사 분야에 안휘준, 박물관학 분야에 김재원, 권이구, 손보기, 고고학 분야에 김원룡, 건축 분야에 강홍빈 등이 있다.
록펠러 3세 기금이 동서문화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1963년에 시작한 아시아 문화프로그램 (Asian Cultural Program)은 1) 아시아인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아시아인이 미국과 때로 유럽 또는 아시아에서 훈련을 받고 예술활동을 시찰할 수 있도록 여행과 유학 장학금을 제공하고, 2) 아시아 문화전통의 검토와 보존을 고무하기 위해 아시아 박물관 인력이 등록, 목록작성, 사진 자료, 설치, 보존, 교육프로그램 같은 분야에서 박물관 훈련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며, 3) 아사아의 문화적 업적이 미국에서 전시, 공연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해 전시, 공연 투어, 강연-실연 투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4) 아시아에서 미국의 문화적 업적의 전시와 공연을 촉진한다는 4가지 사업목표를 갖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포터 맥크레이(Porter McCray)는 다양한 가치를 지니고 서로 다른 발전단계에 있는 나라들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각 나라가 지닌 독특한 문화에 대한 상호존중과 교류가 필요하고 그것을 토대로 생산적인 문화 관계가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아시아 문화프로그램의 운영을 위한 모델을 개발했다. 사업의 목표와 대상 지역 그리고 지원 분야를 고려할 때 록펠러 3세 기금의 프로그램은 1950년대 파스가 아시아에서 추진한 문화지원 활동이 고도화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1975년 아시아 문화프로그램 운영 12년간의 활동을 평가하기 위해 록펠러 3세 기금은 개인 수혜자들을 대상으로 기금의 지원이 수혜자의 개인적 발전과 경력 그리고 소속기관의 업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한국인 수혜자 총 55명 중 설문지를 작성하여 보낸 사람은 총 11명으로 추정되는데, 이 설문지 내용을 살펴보면 수혜자들이 록펠러 3세 기금의 지원 덕택에 한국의 박물관 제도가 정착되고 고고학과 미술교육 분야가 발전하게 되었다는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수혜자가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정착함으로써 록펠러 3세 기금의 애초 의도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한계도 찾아볼 수 있다. 1970년대에 록펠러 3세 기금은 문화교류의 정치, 경제적 가치를 중시하며 일방적으로 지원에서 방식에서 벗어나 상호교류를 강조하는 방식으로의 변화를 꾀한다. 그 과정에서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등장한 한국문예진흥원이나 대우재단과 같은 한국 공‧사립 문화재단은 상호교류의 주요한 파트너였다. 이러한 문화재단의 출현은 록펠러 재단이 아시아에서 펼친 문화사업의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록펠러 재단이 한국 공‧사립 문화재단의 형성과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는 1970년대 ACC의 사업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한 후속 연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