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할렛 카는 『20년의 위기』에서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팍스 브리태니커를 재건하려던 시도가 실패해 버린 체계적 혼란기의 세상을 분석하면서, 두 가지 요소를 강조한다. 하나는 물질적 영역에 관한 이야기로 패권이행과 자유방임 경제의 몰락, 그리고 뒤이은 파시즘의 부상이라는 구조적 변동에 대한 분석이다. 다른 하나는 이데올로기 차원의 이야기로 전간기(戰間期)를 지배했던 자유주의적 이상주의의 부침에 대한 서사이다. 이러한 카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실제 오늘날 지정학과 지경학의 영역에서 어떤 형태로 위기가 심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이 시대에 우리가 직면한 근본적 질문―오늘날의 세계사적 국면은 과연 전간기에 버금가는 체계적 카오스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긴장일 뿐 자유주의 질서는 과거의 고난 속에서도 그랬듯 다시금 부활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일정한 실마리를 탐색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