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金贈光祿大夫張行願墓誌」, 「金張汝猷墓誌」를 통해 장씨 일족의 제반 사항과 고구려계 북방민족 유예의 실상을 살펴보았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발해, 요나라를 거쳐 금나라에 이르기까지 5백여 년이 지났어도 고구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간 장씨 일족들이 있다. 장씨 일족은 항상 멀리는 고구려 유예, 가까이는 발해 유예라는 잠재의식을 가지고 활동했다. 장씨 일족의 선조는 원래 고구려 동명왕의 유예였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발해를 거쳐 요양으로 옮겨 요나라에서 활동했다.
요동 공훈 집안 가운데 장씨 집안이 제일이라는 묘지석의 명문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장씨 일족은 금나라 건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중앙 무대로 진출하였다. 이후 후손들은 분분히 진사 급제와 음서로 출사하여 자신들의 집안 세력을 형성하였다. 또 요동 명문 집안과의 통혼, 관료 생활에서 자신들의 탁월한 재능과 뛰어난 정무 감각을 발휘하여 황실 권력과 가까이 지내면서 집안의 위상을 드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