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대국을 넘어 군사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중국몽”을 통해 국제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고, 미국은 이러한 중국을 현상변경 시도로 인식하고 있다. 신흥강대국 중국과 기존패권국 미국 간의 점증하는 대결구조로 인해 이 두 국가는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세력전이 이론가와 공격적 현실주의자는 힘의 전이에서 파생되는 구조적 압력이 너무 거세기에 패권전쟁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성장이 전쟁의 구조적 원인에 근접하고 있다는 시각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구조적 압력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패권전쟁이 아직 발생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구조적 원인 이외에 패권전쟁의 시점을 판단하는 변수는 없을까? 패권전쟁을 포함한 모든 전쟁을 보면 구조적 원인과 같은 배경적 요인만으로 바로 전쟁에 돌입하지는 않았다. 배경적 요인이라는 화약통에 불을 붙이는 촉발적 요인이 있어야 국가 간 마찰이 전쟁으로 격화된다. 후자의 요인은 “구조(structure)”가 아닌 “행위자(agent)”가 주도한다. 따라서 구조적 원인과 촉발적 원인은 그 각각이 패권전쟁의 필요조건에 불과하고 이 두 가지 원인이 만나는 접점에서 패권경쟁이 패권전쟁으로 격화된다. 미중 패권전쟁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분석은 방대하지만 촉발적 원인연구는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힘의 격차 등 구조적 원인의 성숙도를 살피는 것만큼이나 행위자 간에 전략적 수준과 작전적 수준에서 조성되는 촉발원인을 추적하는 것도 패권전쟁 여부 및 시점을 판단하는 데 중요하다. 초기에 전략적 수준에 머무르던 미중 간 충돌이 작전적 수준으로 조금씩 전이되고 있다. 촉발적 원인이 성숙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행위자로서 미국과 중국이 천명하는 정책적 기조를 살펴보면 양국은 직접적 전쟁이 최적의 갈등해결 방법은 아니라는 인식을 공유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의 공유는 위기관리 메커니즘을 정상적으로 가동하게 하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따라서 구조적 원인인 ‘화약고’를 ‘점화’시키는 마지막 촉발 행동만은 억제되고 있다. 구조적 압력이 거세더라도 이처럼 행위자 중심의 위기관리 메커니즘이 정상적으로 작동된다면 화약고와 불을 분리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국도 안보이익과 국익을 위해 미중 간 패권경쟁에서 나타나고 있는 촉발적 원인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정책디자인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