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후 쏟아져 들어온 서구의 여러 문명 소비재들은 근대적 삶으로 편입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조선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잡화점 형태의 상점들이 생겨났지만, 시장의 수요가 늘자 점차 전문 상회들이 들어섰다. 소공동에 위치한 테일러상회(W.W.TAYLOR & COMPANY)는 1910년대부터 해방 전까지 활발하게 활동한 종합 무역 상사로, 서구로부터 자동차, 각종 생활 잡화·악기·건축 및 인테리어 용품을 수입했고, 세계 최대의 우편통신판매업체인 몽고메리 워드사(Montgomery Ward & Co.)를 대행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가구와 공예품을 조선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판매했고 해외 여러 곳으로도 수출했다. 테일러상회의 무역활동은 수입과 수출 양방향에서 활발했지만 수출과 관련해서는 조선 가구 분야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테일러상회가 발행한 영문 안내서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테일러상회의 영문 안내서는 두 종류로 파악된다. 첫째가 『옛 골동품상(Ye Old Curio Shop)』(1921)이고, 두 번째가 『한국 것에 대한 이야기(Chats on Things Korean)』(연도미상)이다. 이 책들은 조선의 역사·풍습·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은 여행 안내서인 동시에 테일러상회에서 판매하는 각종 가구와 유기·불상·도자기·호박 액세서리·호랑이 가죽 등을 소개하는 상품 도록의 역할을 했다. 테일러상회 에서 판매한 가구는 크게 고가구와 ‘모던 가구’로 분류할 수 있다. 고가구 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삼층장과 반닫이고, 이는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한 품목이었다. ‘모던 가구’에 속하는 것에는 오래된 목재나 반닫이를 활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가구를 짜고 놋쇠를 교체한 ‘세미 모던’ 가구와 새로운 디자인으로 제작한 것도 있었다. 번쩍번쩍하게 화려한 장석을 붙인 이러한 가구들은 미국인의 취향에 맞춘 것으로,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포퓰러 캐비닛(POPULAR CABINET)’, ‘프린세스 캐비닛(PRINCESS CABINET)’, ‘갑게수리(KAP-KE-SOO-RI)’ 와 같은 이름을 달고 팔린 테일러상회의 모던 가구는 전통적인 장·농·반닫이의 형식을 일본과 서구의 가구 양식을 혼합, 변형하여 작고 아담한 것으로 재탄생 된 것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것들은 해외 여러 박물관·백화점·찻집 등의 상업 공간으로 수출되었다. ‘조선단스(朝鮮簞笥)’로 대변되는 개화기 의류 수납가구는 개항 이후 조선에 자리한 일본의 화양가구 업체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전통을 유지하되 실용성과 장식성을 높인 테일러상회의 모던 가구들은 전통가구의 변화 요인이 단지 화양가구 일변도가 아니라 시장의 다양한 요구에 따른 것이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