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뇌사 장기 기증율은 낮지만 살아 있는 이들의 기증율은 매우 높은 국가이다. 대개 종교적 문화 때문에 뇌사자의 기증이 적고 이 때문에 살아 있는 이들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는 생존기증자 장기이식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글은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한 장기이식의 익숙한 현실을 생명정치적 관점에서 다시 조명하려는 시도이다. 특히, 장기이식의 “수요”는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공급”을 확대하는 기증활성화 운동이 장려되는 현실에서 이 “수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장기이식이 필요한 환자는 어떻게 정해지는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이식대상자로 정의하는가? 이 과정에서 어떤 사회적·경제적 힘들이 작동하는가? 이 연구는 실험적 처치였던 장기이식이 표준치료로 인정되는 과정에 주목하면서 장기의 “수요”는 질병 발생의 자연스런 결과이기보다는 의료적 실천을 둘러싼 생명정치의 결과라는 점을 보이고자 한다. 지난 연구에서 필자는 ‘효의 생의료화’라는 문화적 각본이 강력하게 작동하면서 기증자들의 고통받는 몸이 비가시화된다는 점을 보였다. 이 과정 덕분에 기증자의 몸을 자원으로 만들려는 ‘생명가용성(bioavailability)’ 전략이 끝없이 확장될 수 있었다. 이번 연구에서는 기증자의 몸을 추적하는 대신 의료진, 사회복지사와 수혜자 등을 면담하고 수혜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의료지식의 생산과 실행 과정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다. 그 결과, 환자의 희망, 가족의 요구, 적응증(indications)을 확대하려는 의료진의 노력, 지식의 비대칭적 생산과 특정한 생명경제(bioeconomy) 아래에서 장기이식 대상자의 범주가 꾸준히 확대되는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생존기증자를 가족 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국내 현실 속에서 표준치료와 실험적 치료의 경계가 재구획되고 ‘연명용’ 장기이식과 ‘선제적 조치’로서의 장기이식이 마치 표준치료인 것처럼 도입되고 있었다. 또한, 의료의 공정한 접근가능성을 보장하려는 건강보험과 의료비 지원제도가 병원의 이해관계와 결합하면서 이식 결정의 경제적 장애물을 제거하고 있었다. 장기이식이 열어놓은 기술적 가능성 속에서 이 가능성을 루틴한 시도로 받아들이는 환자와 가족, 이를 정당화하려는 의료진, 의료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정부 정책이 병원의 이해관계와 결합된 현실 등이 모두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장기이식의 수요를 제한 없이 발명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는 지식–윤리–기술–제도가 결합한 생명정치의 한 양상을 드러내면서 이 결과가 갖는 윤리적 의미를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