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박현채와 안병직을 비교함으로써 한국 좌파 민족주의 경제학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은 좌파 민족주의 경제학의 생성 및 발전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박현채와 거의 동일한 지적 배경을 지닌 안병직은 1980년대 후반 중진자본주의론으로 선회한 뒤, 최종적으로는 식민지근대화론 및 뉴라이트 운동으로 옮아갔다. 그러므로 박현채와 안병직의 갈라짐은 좌파 민족주의 경제학의 소멸 혹은 극적인 방향 전환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박현채와 안병직의 갈라짐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과 그에 대응하는 사회운동의 변화라는 흐름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이 글은 박현채의 저작을 검토함으로써, 가장 논란이 많았던 ‘민족적 생활양식’ 개념은 즉자적 민중을 대자적 민중으로 전환시키는 매개로 설정되었음을 밝힌다. 한편 안병직은 극적인 방향 전환 이후에도, 1980년대 중반 박현채가 바로 자신을 비판하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음을 보인다. 분단된 한국 사회에서 사회성격이라는 실천전략적 개념과 마르크스주의적 역사유물론 사이에는 불가피한 긴장관계가 존재하였다. 박현채는 자신이 변화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이러한 긴장 속에 동요했던 것이고, 안병직은 그와 같은 아포리아 자체를 해체함으로써 변화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