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문화의 시원은 무(巫)에서 찾을 수 있다. 무(巫)는 불교, 유교, 기독교와 같은 고등종교의 전파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한국에서는 무속으로, 일본에서는 신도(神道)로 남아 있다. 불교와 유교가 한반도에서 일본에 전해진 것처럼, 무(巫) 문화도 도래인(渡來人)에 의해 한반도에서 일본에 전해졌으리라 짐작할 수 있으나 이를 밝힌 연구는 없다시피 하다. 다만, 신라계 도래인 하타씨의 존재가 학계에서 인정되고 있으며, 신도에서 신으로 신앙되는 천황의 조상 모계가 백제인이라는 주장이 있었고,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는 마쓰리(마츠리, 祭り, まつり)와 한국 굿을 같은 맥락에서 조망한 연구가 있으나, 그 전파나 상호 간 영향을 탐색한 연구는 미진하다. 한국의 무(巫)와 일본의 신도(神道)를 각각 고유한 것으로 조망할 뿐 그 관계를 비교한 연구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그 주된 원인은 한국의 무(巫) 의식이나 일본 신도(神道)의 마쓰리가 지역별 시원을 강조해온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 무(巫)에 대한 일본 기록은 한국 무(巫)에 대한 국내 기록보다 역사가 오래되었고, 한국 무(巫) 문화의 일본 전파에 대한 논증은 없다시피 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하타(秦)씨가 10만여 개의 일본 신사 중 3만 2천여 개의 신사에서 신앙되는 이나리 신(稲荷神)의 본산을 창건하여 서기 711년 이래 신직을 맡아 제사를 관장해오는 점에 주목하여, 신라와 고구려 및 신라와 백제의 끊임없는 전란과 신라 지배층 간의 갈등을 피해 일본으로 이주한 신라계 하타씨가 일본에 정착하여 벼농사, 양잠, 직조 기술 등을 전파할 때 무(巫) 습속도 직간접적으로 일본에 전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과 일본의 무(巫) 의식과 행사에서 두루 사용되는 신장대(神將대)와 오누사(大幣) 및 금줄(禁줄)과 시메나와(注連繩)의 전파를 파악하는 기초적인 탐색을 하였다. 한국의 금줄과 일본의 시메나와를 외적인 모양과 기능 및 벼농사 전래와 도래인(渡來人)의 일본 이주를 중심으로 분석하였고, 한국의 신장대와 일본의 오누사 역시 외적인 모양과 기능 및 마지(麻紙)의 일본 전래와 도래인(渡來人)의 제사 주관 등을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오누사와 시메나와는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파된 물질문화로 볼 수 있으나 이를 다양한 관점에서 실증하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