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요에 보이는 서역적 요소는 이미 여러 연구에서 논의되어 왔지만, 대부분 ‘서역’ 즉, 동쪽과 반대되는 지리적 개념으로 중앙아시아부터 서아시아 모두를 아우르고 있으며, 좀 더 세분화 한다면 페르시아, 아랍 등 이슬람 요소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일명 서역으로 분류된 여러 요소 중에는 페르시아와 아랍 외에도 당대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였던 소그드 문화가 존재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 장사요에서도 Sogdian Whirl로 명명되는 胡旋舞를 추는 무희가 묘사되는 등소그드 문화와 장사요는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당대 도자기에 보이는 호풍이 유독 장사요에 많이 드러나고 있음은 주목을 요한다. 이에 본 연구는 장사요에 보이는 아랍,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등의 외래적 요소 중에서도 소그드인을 통해 전해진 ‘호풍’에 주목하였고, 늦어도 9세기부터 증가한 호풍 양식의 제작배경을 고찰하였다.
장사요는 안사의 난 이후를 전후로 개요한 요장으로, 북방의 형요와 당삼채에 보이는 서역 요소가 남전하여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 배경에는 북방의 숙련된 인력과 함께 소그드인들의 남하가 주요 원인 중 하나였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특히 ‘康’과 ‘何’ 명문의 출현을 통해 그들이 독립적 공방을 운영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일정 지역에 정착하여 개인 소유의 가게운영과 물건의 생산, 판매의 전 과정에서 소득에 대한 세금 발생과 납부의 의무는 필연적이므로장사요 요업에 참여하였던 소그드인들은 상업에 종사한 호상이 아닌 당에 입적한 편민 신분의 소그드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中唐 이후 교통의 중심지였던 장강 중류지역으로 소그드인의 남하와 함께 기존 악주요의 요업을 기반으로 장사요 요업이 흥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덧붙여 이미 5세기 전반부터 모여든 소그드계를 포함한 서역인들의 흔적과 당대 광동에서 영향력이 지대했던 번방의 존재는 소그드인들이 장강 중류에 정착한 주요 배경으로 추정하였다.
그 밖에 당대 장사요와 함께 대내외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월주요 청자가 이전과 달리 호풍 양식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이 역시 북방 사대부와 문인들의 절동 지역 집결을 주된 이유로 판단하였다. 음다문화의 유행과 함께 명차의 산지였던 절강 湖州에 모여든 문인 출신 다인들의 존재는 증가하는 월주요 청자의 내수시장을 고려했을 때, 이들의 취향에 부합되는 문인풍의 다기, 문방구 등의 생산량 증대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