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라면이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식품으로서 라면이 그토록 강력한 선호 식품이 될 것이라는 예상하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라면은 1960년대 혼분식 장려 정책과, 맛과 영양에 대한 관심, 그리고 쌀 부족 문제의 해결 가능성으로 인해 정부와 소비자로부터 주목받는 식품으로 올라섰다. 1960년대 말 난립했던 라면 제조업체들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 라면 시장은 삼양이 주도하고 롯데(농심)가 뒤를 따르는 2파전 형세로 압축되었다. 두 업체는 라면 시장을 양분하면서 식품 판매 시장 규모를 키웠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까지는 삼양의 시장 점유율이 높은 상황이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높은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점유율에 변화가 일어난다. 일단 1981년 사발면(용기면)의 유행과, 신 상품 출시(1982년 너구리, 1983년 안성탕면)가 성공을 거두면서 농심의 매출과 점유율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1983년에는 팔도, 1985년에는 청보(1988년 오뚜기가 인수), 1986년에는 빙그레가 후발 제조업체로 라면 시장에 뛰어들었고, 이로 인해 상품 경쟁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삼양이 차지하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은 점차 잠식당했고, 후발 제조업체들은 새로운 고객과 더 폭넓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혈투를 벌여나갔다. 라면 경쟁의 여파로, 덤핑 판매, 과열 광고, 판촉 경쟁 등이 심화되는 결과가 산출되었으며 때로는 사회적 이슈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것은 가히 라면을 둘러싼 전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치열한 대결의 장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생산된 순기능도 만만하지 않다. 라면의 상품 경쟁력이 상승하면서 수출과 내수가 모두 증가하는 상황을 창출했고, 새로운 형식에 도전하는 창의적인 라면이 나타나기도 했다. 넓은 시각에서 볼 때, 1960~1980년대는 라면의 도입과 보급의 시기로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