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노년은 몸의 불가역적인 노화와 함께 다가오니, 노년은 기본적으로 몸의 현상이다. 노인이 실존의 주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노년의 문제는 외부의 사회적, 제도적 차원보다 우선 주관적, 체험적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조선시대의 유자(儒者)들이 몸의 노화 현상을 경험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며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한 다양한 방식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특히 몸의 노화 현상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흰머리와 어두워진 눈, 빠진 이빨이 몸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기능이 다르므로 각각의 의미 부여와 대응 방식을 구분하였다.
우선, 인의(仁義)에 기초한 맹자(孟子)의 왕도정치(王道政治)에서 자발적인 공경과 돌봄의 대상을 나타내던 ‘백발(白髮)’은 자연의 공도(公道)로서 피할 수 없는 대표적인 노화 현상이었다. 조선의 유자들은 이러한 흰머리를 죽은 뒤에도 보존해야 하는 부모에 대한 효도나 임금에 대한 불변의 충성 등 윤리적, 정치적 가치로 채색하였다. 특히 노년의 머리털은 한편으로는 목숨보다 소중한 중화(中華) 문명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다른 한편으로 흰머리마저 빠진 노년의 대머리는 문화적 관습이나 구속에서 벗어나는 자유의 의미로 해석되었다.
둘째, 눈이 어두워지면 유자들은 외향적인 차원에서 산수(山水)의 풍광(風光)을 즐기거나 화초(花草)처럼 일상의 미세한 사물로부터 삶의 활기(活氣)를 얻고자 노력하였다. 다만 그들은 시력을 회복시키는 안경(眼境)에 의존해서라도 궁리(窮理)의 대표적인 방법인 독서(讀書)를 통해 학문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의 자세에 중점을 두었다. 더 나아가 외부의 시각적 자극을 차단하는 ‘정좌(靜坐)’는 마음의 본체인 신성한 본성에 다가가 삶의 참된 의미를 깨닫는 내향적 공부로 실천되었다.
마지막으로, 음식을 씹거나 말을 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이빨이 빠지는 충격을 경험한 유자들은 노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긍정하고 기존의 삶의 방식에 대해 성찰하였다. 가령 얼굴의 변형은 타인과의 관계를 줄여 고요한 삶에 나아가게 만들고, 대화할 때 발음이 새는 문제는 침묵을 지키거나 내면의 마음을 살피게 하였으며, 음식 섭취의 어려움은 부드러운 음식을 먹는 전환점이 되었다. 특히 몸에서 분리된 이빨에 대한 성찰을 통해 천지의 조화를 이해하고 외물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이치에 순응하는 도덕적 주체성을 자각하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조선의 유자들은 늙은 몸에 관한 다양한 성찰과 마음의 상대적 자율성에 기초해서 늙음을 비루하게 탄식[嘆老]하거나 망령되게 망각[忘老]하지 않고 자연스런 삶의 과정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안로(安老)”의 지혜를 보여주려 노력하였다. 오늘날 늙음을 편안하게 여길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면, 우선 젊음과 늙음의 극단적 대립과 갈등을 강조하여 노년을 전면 부정하거나 차별하는 담론을 벗어나 젊음과 늙음의 대대(待對) 관계에 기초해서 노년의 공공성(公共性)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