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추정법리는 시장사기이론으로도 불리는 법리로서 증권사기에 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사기적 행위에 대한 원고들의 신뢰를 추정함으로써 증권거래상 거래인과관계 증명의 난해함을 해소해 주었다. 그러나 이 법리는 시장완전성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현대 자본시장의 주요한 축을 담당하는 고빈도매매, 공매도, 장외 파생계약 등의 비정형적 투자전략은 투자판단에 자연인의 개입이 없을 뿐더러 시장완전성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투자에 임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현재 차등의결권이 도입되지 않았고 의결권시장도 발달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향후 총수익스왑이나 차액계약 등의 파생상품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할 것이고, 시장장벽이 낮아지고 네트워크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지연차익(Latency Arbitrage)과 정보비대칭을 이용한 약탈적 거래(Predatory Trading)가 발생하는 한편, 고빈도매매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만약 이러한 비정형적 투자에 대한 사기가 발생할 경우 우리나라에서도 손해배상소송에서 비정형적 투자자들의 시장완전성에 대한 신뢰(거래인과관계)의 추정 문제를 두고 논쟁이 일어날 소지가 있다.
이에 관해서 우리나라 자본시장법도 이 법리를 받아들였다고 평가되는 반면, 증권사기 관련 성문규정들 간 거래인과관계의 명문화부터 일관되지 않는 등 체계상의 미비점을 노출하고 있고, 법원도 많은 경우 이 법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비정형적 투자전략의 경우 시장완전성에 대한 신뢰의 존재를 추정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논의하는 바는 찾아보기 어렵고, 이에 관한 실증적․이론적 논의도 찾아보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는 그 법리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오히려 이에 관한 비판적인 논의들이 활발하게 이뤄진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에 더해서 우리나라는 남소방지라는 명분 하에 증권사기에 기한 손해배상소송, 특히 증권집단소송이 기대한 만큼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데, 신뢰추정법리의 무비판적 수용이 증권소송의 증가 및 남용의 주요 원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인 바, 이러한 남소문제를 합리적으로 해소하고 자본시장법의 목적에 부합하는 투자자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신뢰추정법리를 자본시장의 현실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