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도시의 흉년』을 김복실이라는 유례없는 여성 경제 주체가 빈집털이에서 시장의 소자본가로 성장해가는 서사와 그 전이의 임계치로 독해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가 상당한 재화를 가정에 제공함으로써 ‘여성 가장’의 욕망을 드러냈음에도 이면적으로는 가정 내에서 매우 취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동시에 살폈다. 당대 여성의 소자본가로의 성장, 그리고 여성 가장으로의 정체화, 이 두 가지의 존재 전이가 사실상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는 전제 하에, 이러한 여성의 상향성의 욕망이 1970년대 한국 사회에서 불가능했던 이유와 그것의 의미를 중심으로 이 소설을 읽었다. 일반적으로 사회의 자본주의적 발전은 화폐의 지배 속에 모든 것을 재편하면서 전통적인 사회적, 문화적, 도덕적 경계선을 해체하는 경향을 보이는바, 70년대 경제 성장기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성공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경계를 부정하고 부단히 일탈하는 주체의 모습을 보이는 김복실은 바로 그러한 자본주의적 욕망의 현신이다. 이때 그녀의 경계 넘기가 어느 지점에서 한계에 부딪히는지 살펴보는 것은 본격적인 산업 자본주의의 시대에 접어든 1970년대 한국 사회의 성격을 가늠하게 해준다.
김복실은 집에서는 자신이 일군 부를 통해 ‘여성 가장’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수록 소외되고 남편에게 철저히 배신당한다. 그리고 사업에 있어서는 노골적인 약탈과 착취가 횡행하는 ‘음성 경제’의 영역에서 승승장구하다가, 착취의 흔적에서 가장 거리가 먼 기업형 사업가로서 공식적이며 남성적인 경제의 영역으로까지 상승하고자 했을 때 파산하고 만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김복실의 몰락의 이야기를 여전히 공고한 가부장적 지배 체제가 소자본가로서 사업을 하고 집안을 경제적으로 부양하는 여성을 구조적 한계에 가두고 몰락시키는 이야기로 읽었다. 김복실의 욕망과 도전이 사회 속에서 겪는 비참한 좌절의 운명은 사회적 혼란과 격변을 기회로 등장한 예외적 여성 앞에서 위기에 빠진 가부장적 질서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반응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독해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