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펜데믹에 직면하여 주류 국제정치학계는 현 비상사태가 미중경쟁이나 자유세계질서 향방 등에 어떤 효과를 낳을 것인지에 논쟁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부상하고 있는 “인류세”와 “포스트휴먼”의 문제설정을 숙고하였을 때, 이런 분과학문적 틀에 국한된 기성학계의 질문이 과연 충분히 성찰적이고 근본적 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세계에서 무엇이 가장 “정치적”인 갈등과 협상의 대상인가? 전통적인 의미에서 민족국가 같은 거대집단 간의 정치문제를 다룰 뿐 아니라, 인간과 생명권 간의 신진대사 과정을 “지구행성”이라는 맥락에서 사고할 수 있는 정치학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는 것은 아닐까? 이에 본 연구에서는 근대 패러다임에 고착된 국제정치학의 구속복을 초월해, 인류종 전체와 그들이 거주하는 지구와의 조화로운 관계를 고민하는 “행성 정치학” 문제틀 창안의 필요성을 타진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인류세 담론과 그것이 21세기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미친 영향을 인식론, 존재론, 규범론 등의 차원에서 살펴본다. 다음으로 인류세의 위기를 겪으며 한계에 부딪히게 된 기성 국제정치학의 문제점들을 분석한 후, 행성적 실재라는 조건과 조우한 정치학이 어떻게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를 안보, 거버넌스, 불평등 등의 영역을 중심으로 탐구해 보고자 한다. 결론에서는 포스트휴먼 시대 정치학의 실천론으로서 인류세 위기를 극복하는 새로운 행성문명의 건설이라는 윤리적 화두를 제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