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변경의 원칙은 신의칙에 근거한 계약법상 법리로, 계약준수의 원칙에 대한 예외로 이해된다. 그동안 우리 법원은 법리로서 사정변경의 원칙이 인정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실제 사안에서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를 인정하는 데에는 매우 인색하였다. 그런데 지난 해 대법원에서는 사정변경의 원칙을 이유로 임대차계약의 해지를 인정한 바 있고, 대상판결도 같은 취지로 계약의 해지를 인정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하급심으로도 이어지고 있는바, 이러한 일련의 판결을 통해 사정변경의 원칙이 더 이상 이론적인 법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규범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사정변경의 원칙은 기술의 발전이나 전염병의 발생 등으로 예상하기 어려운 현대 사회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정변경의 원칙을 적용하면, 계약을 그대로 이행하여야 한다거나 불능이 되었으므로 이에 대한 책임을 전부 면한다고 하는 것에 비하여, 다양한 방식의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급변하는 환경에 시의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신의칙에서 근거하는 만큼 유연성을 유지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실제로 이 원칙이 문제를 해결하는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그 요건과 효과를 더욱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대상판결을 계기로, 사정변경의 원칙과 인접한 법적 개념들을 구별함으로써 사정변경의 원칙이 고려될 수 있는 경우를 분명히 하고, 사정변경의 원칙을 적용하는 경우 그 요건과 효과와 관련하여 관련된 쟁점들을 두루 살펴보고자 하였다. 향후 사정변경의 원칙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사건에의 적용을 염두에 둔 보다 실질적인 논의가 계속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