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던 청심루는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를 비롯한 약 40여명의 시판(詩板)이 걸려 있을 정도로 명소였다. 이처럼 유명 문인들이 다수의 한시를 남긴 것에는 청심루가 자리했던 여강의 위치와 경관, 그리고 역사적 배경 등과 연관이 깊다. 비록 1945년 군수 관사의 화제로 인해 수많은 작품들이 청심루와 함께 소실되었지만, 현재 여러 문집을 통해 해당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청심루제영 가운데는 당시 여주목사의 시와 함께 당대 교유했던 문인들의 시, 그리고 다수의 차운시 계열 작품들이 전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해당 작품들을 통해 청심루를 중심으로 한 교유시의 면모와 차운시의 특징 및 창작배경, 전승양상 등에 대해서도 논의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