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국왕립아세아학회 한국지부와 그 학술지가 1900-1940년 사이에 한국학 담론 창출과 전문화에 기여한 성과와 영향력을 재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초창기에 한국학을 주도했던 프랑스 선교사들이 퇴조하고 영국과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학 담론을 지배했다. 둘째, 코리안 리포지터리·코리아 리뷰와 비교하면 트랜잭션은 참고문헌을 밝히고 이미지 자료를 활용하는 등 좀 더 전문적이며 체계적인 학문적 포럼이었다. 셋째, 생태환경사와 같은 새로운 주제를 발굴하고 미래 한국학 학자를 키우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담당했다. 필자는 근대한국학의 계보를 객관적·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지식 네트워크의 트랜스내셔널 뒤엉킴에 특별히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서양선교사들이 19세기말을 전후로 발명·국제화하고 20세기 초반에 심화했던 한국학의 제1의 물결, 일본제국이 한국의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하고 피지배자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구하려는 의도로 재생산한 한국학의 제1.5 물결, 그 사이 공간에서 등장한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한국학의 제2물결―이런 세 갈래 물결이 부딪히고 뒤섞이며 서로를 밀고 당기며 상승하여 한국학의 역동적인 무늬와 다양한 색채를 만들었다고 필자는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