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박완서의 『살아있는 날의 시작』을 중심으로, 80년대 소설에서 보이는 맞벌이 여성이 속한 중산층 가정의 테일러리즘 양상과 균열, 그 동역학에 대해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했다. 대졸 사무직 여성들이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문제는 중산층 가정의 테일러리즘화의 과정과 그것이 초래하는 삶의 균열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소가 된다. 맞벌이 여성들은 일과 가사일, 자녀 양육 및 교육을 병행하기 위해 체계적인 시간 관리를 해야 하며, 바깥에서 일하는 시간만큼 가사와 가정 일에 결여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압축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하는 등 질적 효율성의 관리 의무까지 떠안는다. 게다가 끊임없이 가정 안팎의 타자들에 의해 불완전한 의무 수행을 의심받고, 실제로 그것이 미흡하게 수행될 경우 비판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등, 취약한 위치에 서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살아있는 날의 시작』은 이른바 ‘워킹맘’ 첫 세대의 등장, 그러나 아직 그러한 ‘워킹맘’을 수용할 사회적 논리나 기반이 마련되기 이전의 혼란스러운 과도기의 상태를 보여준다.
위의 문제의식 아래 이 글은 2장에서는 당시 중산층 가정의 여성들에게 요구되었던 테일러리즘의 ‘미덕’과 여기에서 일어나는 긴장과 역동적 계기를 예비적 작업으로 살폈다. 3장에서는 『살아있는 날의 시작』의 맞벌이 여성 청희와 그녀의 가정을 중심으로 이러한 규율과 관리의 작동 방식을 분석했고, 이 과정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경우 가정의 모든 일을 계획하고 관리하는 경영자로서의 역할과 일상의 어셈블리 라인에서 복무하는 노동자의 역할이 맞물려 있는 모순적 구조에 놓여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4장에서는 청희가 겪는 실패와 좌절의 의미에 대해 분석했다. 그녀가 자신의 기계적 일상–삶에 깊은 회의와 환멸을 느끼며 자신이 속한 중산층 가정의 어셈블리 라인을 중단시키기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정쩡한 봉합처럼 보이는 결말과 그러한 결말이 보여주는 리얼리티의 의미를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