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보르헤스가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작가가 아니라 아르헨티나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작가라는 점을 입증할 목적으로 「남부」(1953)를 분석한다. 이 단편을 선택한 이유는 보르헤스 개인의 삶과 문학 여정이 진하게 녹아 있을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역사, 정치, 지리적 상상력, 지성사의 관점에서 볼 때 다양하고 복합적인 해석 지평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II장에서는 보르헤스의 삶과 문학적 전사(前史)가 「남부」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 다루고, III장에서는 「남부」와 페론주의의 관계를 주로 추적하고, IV장에서는 프런티어 지대로서의 남부가 아르헨티나 역사와 이 단편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분석한다. 「남부」의 배경이 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페론주의에 대한 보르헤스의 분노와 절망이다. 19세기에 철권통치를 한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와 아르헨티나 지성사에서 오늘날까지도 되풀이되고 있는 문명과 야만의 대립구도를 정립한 도밍고 F. 사르미엔토에 대한 시각까지 바뀔 정도로 그의 분노와 절망이 컸다. 이례적으로 정치 현실에 대한 텍스트를 다수 썼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압도적인 현실에서 보르헤스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별로 없어서 「남부」의 주인공 후안 달만은 이기지도 못할 결투에 나선다. 이는 문명과 야만의 대립구도에서 문명이 패하는 것을 암시한다. 과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변두리나 수르 지역에 대한 신화적 형상화의 연장선상에서 남부 프런티어 지대로 그 작업을 확대하는 매력도 지닌 단편이지만, 신화화 작업의 핵심 장치인 과거로의 여행 역시 19세기 프런티어 지대의 야만을 확인하는 일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