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경상남도 山淸 泛鶴里 삼층석탑에 새겨진 부조상의 도상 및 양식적 특징을 검토하여 존 명과 조성 시기를 논하고, 이 부조상이 통일신라 석조미술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범학리 석탑 상층기단 부조상은 한 면에 2구씩 모두 8구가 배치되어 있고 무장형의 八部衆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 상들은 팔부중의 전형적인 도상적 특징을 지니고 있지 않아 단언하기 어 렵다. 또한 금강역사나 사천왕 등 다른 특정 도상이라고 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도 없다. 그러므 로 상층기단 부조상은 특정 존명을 명명하기는 어려우므로 넓은 의미에서 ‘神將像’이라 일컫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범학리 석탑 1층 탑신석의 부조상은 한 면에 1구씩 4구가 배치되어 있는데, 1층 탑신에 위치한 다는 점, 연화좌 위에 앉아 있고 두광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菩薩像임을 알 수 있다. 네 보살상 은 공양하는 자세로 손에 지물을 들고 있기 때문에 供養菩薩像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보살상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다. 동면의 보살상이 중심이 되고, 나머 지 공양하는 보살상의 방향이 정면(현재 동면)을 응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보살상들의 자세와 시선은 참배자가 탑돌이를 할 때, 정면을 향해 공양하는 보살상을 시작으로, 시각적으로 연동하면서 공양하는 보살들을 보며 예경 하도록 의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후반이 되면 석탑의 상층기단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지만 존 명을 알 수 없는 신장상이 많이 나타나며, 1층 탑신에 위치하는 부조상으로 보살상이 등장하므로, 범학리 석탑은 9세기 후반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범학리 석탑에 부조된 신장상과 보살상의 조각 수법은 저부조로 입체감이 떨어지며 선각을 많이 이용하여 표현했다. 대체로 9세기 이후에는 새김의 깊이가 얕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양감 으로 보더라도 범학리 석탑은 9세기 이후에 조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 도상적 특징을 통해 통일신라 9세기 후기의 석탑, 석조여래좌상 대좌, 僧塔에 부조된 신장상 및 보살상에서 범학 리 석탑 부조상과 친연성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범학리 석탑의 부조상과 같이 상층기단에 신장상과 1층 탑신에 보살상으로 구성된 조합은 흔치 않은 사례이다. 이는 상층기단의 신장상을 통해 석탑을 수호하고, 1층 탑신의 공양보살상을 통해 부처를 공양한다는 의미를 담으려 한 것으로 생각된다.
범학리 석탑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에서 시작한 탑 부조상이 9세기 후반이 되면 경주 이외 지 방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 가는지 그 변화를 잘 보여주는 대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