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사고 초기 일본 정부와 제도권 전문가들 다수는 사람들이 ‘가짜 뉴스’나 ‘괴담’이 아닌 ‘정확한 과학지식’을 통해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림으로써 재난 상황에서 불안을 진정하고 ‘정상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시민이 위험에 관한 지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결핍 모델(deficit model)에 기반한 이와 같은 전통적인 위험 관리(risk management) 접근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시민들의 군중화된 방사선량 측정 활동은 더 많은 시민이 더 쉽게 위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했으며, 공공 기관에서 생산된 데이터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시민의 광범한 참여를 독려하는 위험 거버넌스의 다중심적 접근법은 시민들의 이러한 활동이 전통적인 위험 관리 모델을 보완하고 혁신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글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선량 측정과 정보공개 등을 위해 생겨난 네 개의 시민 네트워크의 활동을 위험 거버넌스와 크라우드소싱 시민 과학의 길항이라는 맥락에서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본고는 이들의 활동이 단지 방사선량 데이터 생산하는 것에서 나아가, 시민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정치⋅경제적 문제와 사회문화적 제약 속에서 ‘위험’ 그 자체의 의미를 재구성하는데 있다고 주장한다. 시민 과학의 실천에서 시민의 참여는 단순히 데이터의 밀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 시민들이 새로운 인간-사물-기술의 체제 속에서 그 관계를 재구성하는 수행에서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