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신자들이 신앙의 마음을 담아 신적인 존재에 바친 봉헌물은 고대로부터최근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의 종교 전통에서 다양한 재료 및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오랫동안 종교 연구에서는 종교 의례로서의 봉헌이라는 행위에 주로 주목했고, 봉헌물 자체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지난 세기말부터‘물질 문화(material culture)’ 및 ‘물질성(materiality)’에 주목하는 종교 연구들이 부상하면서 비로소 봉헌물은 의례의 컨텍스트를 넘어 그 자체로서 새로운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특히 2010년대에 중세 미술사학자 이타이 와인립(Ittai Weinryb)이 기획한 심포지엄과 전시회 및 이와 관련된 출판물들은 ‘봉헌물’이라는 개념 하에 포함될 수 있는 수많은 서로 다른 종교 전통의 예들을 한데 모아, ‘물질종교(material religion)’라는 프레임 안에서 이들이 어떻게 새롭게 연구될수 있는지, 또한 이러한 연구가 종교에 관해 어떠한 새로운 질문들을 제기할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글은 이러한 흐름 위에서, 특히 ‘엑스-보토(ex-voto)’라 불리는 봉헌물들을검토해보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성스러움을 단지 인간의 의례 행위만이 아닌 사물의 행위성을 통해 논의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본다. 고대 로마 시대, 서약에 따라 신들에게 바쳐진 사물들에 쓰인 문구 ‘ex voto suscepto(내가 바친서약으로부터)’에서 기인한 ‘엑스-보토’는 가톨릭 교회에서 신자들이 바친 여러봉헌물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최근에는 봉헌물 전반을 지칭하는 말로확장되어 쓰이는 경우도 있다. 이 글에서는 특히 흔히 ‘주술적 성격’으로 간주되어온 봉헌물의 특성이 사물의 행위성으로 재서술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며, 봉헌물의 ‘현전’이 주변의 다른 사물들, 물질적 요소들과 결합해 만들어내는 창발적 성스러움에 주목한다. 이 과정에서 ‘물질종교’라는 주제 혹은 방법론을 재고해 보며, 성스러운 사물에 대한 기존 종교학의 논의들을 ‘물질적으로 전환시키는작업’의 의미에 대해 질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