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물(聖遺物)은 일반적으로 특정 종교의 창시자나 성인의 유골, 이들이 소지혹은 사용했던 물품을 연상시키지만, 기독교(가톨릭) 전통에서는 예수가 흘린피(聖血; 寶血)는 물론이고 성모 마리아의 젖(聖乳)도 성유물로 공경의 대상이며커다란 구원론적 의미를 가진다. 이는 보통 몸 밖으로 유출된 체액은 혐오와 두려움의 대상 즉 아브젝트(the abject)로 접촉이 기피되는 것과는 큰 괴리가 있다.
따라서 ‘성스러운 체액’은 다른 성유물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성격과 위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필자의 문제의식은 보통은 기피의 대상인 체액이 어떤 심리적/ 감각적 메커니즘을 통해 성스러운 물질로의 새로운 위상을 얻어 순례와 기도/명상의 대상이 되고 궁극적으로 구원을 약속하는 매개물로 기능하는가이다.
본 논문에서는 우선 중세 유럽에서 성혈(聖血)과 성유(聖乳)가 성유물로 어떠한종교적 의미와 초자연적 힘이 상정되어 공경의 대상이 되고 순례와 같은 실천행위를 유도하였는가 살펴보았다. 이어서 ‘성스러운 체액’에 초점을 맞추어 어떻게이들 체액이 강렬한 심리적⋅감각적 반응을 일으키면서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구원을 약속하는 힘을 가지는지 아브젝트와 아브젝시옹 이론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였다. 더 나아가 본 논문에서는 중세 후기 종교미술에 주목하여 예수와 성모마리아의 이미지에 왜 아브젝트 - 피, 젖, 상처 등 - 가 적극적으로 차용되며, 이는 또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논의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아브젝트/ 아브젝시옹 이론이 최근 주로 여성학과 예술비평을 중심으로 담론이 활발히 생산되고 있다면, 종교연구에도 관련 개념이나 이론을 적용하여 특정 종교현상을 분석⋅설명하는데 있어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