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부터 진행된 고고학 발굴 작업은 중국 허난성(河南省) 안양시(安陽市) 샤오툰촌(小屯村) 일대가 상 왕조 후기 도읍지 은허(殷墟)라고 하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이글은 중국 고대 도시 은허의 종교적 성격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안양 샤오툰촌이 과연 은허인지를 둘러싸고 학자들 사이에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의견의 불일치는 고대 문헌에 나타난 은허 관련 기록이 일관적이지 않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는 이와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갑골문 자료를 참고하여 안양 샤오툰을 은허로 보는 견해를 취하였다. 갑골문에 대읍상(大邑商)으로 표현된 장소는 은허를 가리키며, 이곳은 곧 오늘날 안양 샤오툰이라고 하는 사실은 본고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읍상 은허는 고고학 발굴을 통해서 고대 도시의 면모를 드러냈다. 궁전 종묘 구역, 왕릉 구역, 수공업 지역, 거주지, 배수 체계 등은 이러한 발굴 작업을 통해서 확인된 유적이었다. 특히 궁전 종묘 구역과 왕릉구역은 중심지로서 대읍상 은허가 무엇보다도 종교도시였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본고는 지면의 한계상 궁전 종묘 구역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궁전 종묘 구역에서는 대규모 건축물의 기단과 수많은 제사갱, 갑골, 청동 예기 등의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었다. 제사갱과 갑골, 청동 예기 등의 발굴은 이곳이 제사와 점복을 거행하였던 장소였음을 입증하는 구체적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본고는 건축 기단 위에 구축된 건물도 갑골문의 기록을 참고하여 종묘라고 보았다. 무엇보다 이러한 종묘는 종교적인 기능 이외에도 정무를 관장하는 복합 공간이기도 하였다. 상 왕조는 궁묘일체의 공간 구성을 토대로 정치와 종교가 미분화된 상황에서 작동하였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종묘는 정치와 종교의 공간이었을 뿐 아니라, 생활 거주 공간이기도 하였다는 증거도 포착되었다. 종묘는 살아 있는 사람과 조상의 공동 거주 구역이었다. 중국 고대 도시 대읍상 은허는 이와 같은 중심 구역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종교적인 목적과 기능을 지닌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고대 도시가 지닌 종교적인 목적과 기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밝히는 작업은 추후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