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흑구의 초기시, 특히 미국 유학 생활 기간(1929.02-1934.03)의 시에는 도시성과 민중 지향성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들 작품들은 작품 경향에 있어서나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서 주목할 만하다.
대도시 시카고의 전차 풍경을 제시한 「첫 동이 틀 때」, 홀스테드 전차 안의 풍경을 제시한 「밤 전차 안에서」, 시카고의 풍경을 배경으로 동지들을 회고하는 「시카고-사과연구 동지들에게」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런 경향은 기법적 측면에서 감정의 절제와 도시 관련 어휘의 풍부한 사용을 초래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모더니즘 경향의 작품과 유사해졌다. 따라서 그의 이런 시들을 ‘모더니즘 경향의 민중시’라 부를 수 있다.
한흑구의 ‘모더니즘 경향의 민중시’의 기원은 칼 샌드버그의 도시 민중시학이라 할 수 있다. 한흑구는 그의 초기 평론에서부터 칼 샌드버그에 주목하였다. 민중 지향적 시선으로 대도시의 풍경을 적극적으로 묘사하는 샌드버그는 한흑구의 이런 시적 경향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국 모더니즘 시의 전개를 고려할 때 한흑구의 ‘모더니즘 경향의 민중시’는 김기림이 반성에 도달한 모더니즘 시, 즉 지양을 통해 바람직한 상태에 도달한 모더니즘 시(“경향파와 모더니즘의 종합”, “모더니즘과 사회성의 종합”)를 여러 특수한 조건에 의해 선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