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공서(共棲)’라는 개념을 통해 전통시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불평등한 사회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실천 행위의 양상을 다양한 문헌자료를 통해 확인하고, 의미를 살펴보려는 것에 해당된다. 고전문학에서 위계와 계급의 문제는 신분제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엄연한 실제로 이해된다. 이때 위계와 계급의 문제는 차별의 시선을 내포한 것이기에 상이한 조건의 현실이 동일한 시공간에서 펼쳐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조건적 차별 속에서 공존해 나가는 방식이 공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서는 이른바 위계와 이종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공생의 현실적, 실체적 재현의 개념으로 이해된다. 이는 공존과 소통 등으로 인간과 타자를 인식할 때 야기되는 개념과 현실의 틈을 보완하며, 현존 관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사실적 인식과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공서는 위계적 현실의 관계 속에서 상상과 희망에 기반한 인식에서 벗어나 관계의 정치성을 포착하되, 사회적 약자의 희생과 헌신 등을 당위로 규정하는 게 아닌 계급성을 초월하는 인정의 발현으로 재인식할 수 있다. 이는 지배계급 중심의 사회질서 체제 안에서 포착되는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존재가 공서의 대상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의 일원으로 환기됨을 보여준다. 이름 없는 자로 묻힌 역사가 아닌 호명되는 주체로 일어서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공생이나 공존이 대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가치 우위에 비중을 두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시각이 우세하다면, 공서는 오히려 한 발짝 더 밀착해 둘 사이에 발생하는 정치적, 관계적 맥락을 고려하면서 타자와의 삶이 실현되는 양상에 다가선 것이라 할 수 있다. 본고를 통해 전통시대 공동체의 삶의 방식이 지닌 정치성을 주목하면서, 공서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탐색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