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1930년대 〈개벽사〉에서 발행한 『혜성』, 『제일선』, 속간 『개벽』 잡지들의 매체 전략의 차이를 분석하여 대중성과의 역학관계를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먼저 『혜성』은 1920년대 『개벽』을 계승한다는 의지로 탄생한 잡지였다. 이런 이유로 정론성이 강한 논설을 과도하게 게재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중이 읽기에 난삽하고 어려운 내용과 국한문 혼용체의 남용으로 『혜성』은 독자층의 외면을 받았다. 이에 『혜성』은 9호부터 논설을 줄이고 그 자리에 중간 기사의 성격을 지닌 수필류와 기타문예로 서지의 장르적 변화를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한계에 부딪치고, 결국 제호와 크기를 변경한 『제일선』의 창간으로 이어졌다. 『혜성』의 매체 전략은 아이러니하게도 엘리트 계층인 지식인에게도, 일반 대중 독자에게도 선호되지 않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제일선』은 『혜성』의 실패를 거울삼아 ‘문예 진흥’과 ‘쉬움’을 매체 전략의 목표로 삼고 탄생하였다. 이를 위해 논설의 비중을 반으로 줄이고, 그 자리에 수필과 강담, 만화류 등의 쉽고 재미있는 취미 기사로 대체하였다. 특히 『제일선』은 신인작가를 발굴하여 문예 진흥에 힘을 들였고, ‘강담’, ‘모던춘향전’의 취미 흥미 서지로 독자의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제일선』이 『혜성』의 매체 전략을 버리고 선택한 전략이 〈개벽사〉의 대중 잡지인 『별건곤』과 유사해지면서 『제일선』만의 정체성이 사라진 잡지가 되어버렸다.
속간 『개벽』은 1930년대 〈개벽사〉의 잡지가 실패한 이유를 분석하고 반성한 후에 새로운 의지로 탄생한 만큼 창간호부터 필진의 구성과 내용이 풍부했다. 시사와 문예, 그리고 생활 관련 잡저들로 골고루 분포되었고 독자들의 호응도 좋았다. 특히 문예란의 기획은 화려한 작가들의 구성으로 『개벽』시대를 복원할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겨우 4호까지 출간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개벽사〉의 이러한 부침은 검열, 경제적 상황의 외재적인 원인뿐 아니라 〈개벽사〉 편집진들의 매체 전략의 실패와 잡지의 대중성에 대한 안일한 기획 등 내재적인 요인에서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