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20년대 한국 근대문학에서 대두된 생명주의를 분석하기 위한 서설 격에 해당한다. 그동안 문학계 안에서는 생명주의를 신비주의와 초월주의에 무게를 둔 낭만주의적 입장에서 논해왔다. 그 낭만주의적 경향이 신경향파 문학과 그 이후에서도 작동했음을 확인하는 연구들이 제출되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생명주의의 특성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다른 시선, 즉 현실적이고 과학적 입장에서 생명주의를 분석하려고 한다. 이 글의 핵심은 서구 생명주의와 다이쇼 생명주의의 비교를 통해 차이점과 그 발생의 원인과 배경을 찾는 작업일 터인데, 여기서 일본의 생명주의가 초월주의와 신비주의에 침잠해 있었던 것과는 달리 서구의 생명주의는 과학적 실증을 바탕으로 출발했음을 확인할 것이다. 일본의 생명주의가 서구 생명주의를 수용하면서 정착됐지만 그 차이점이 발견되는 것은 당시 일본 지식계의 사정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터다. 다이쇼 시대 생명주의를 논할 때 거론되는 에머슨⋅오이켄⋅베르그손의 생명사상을 일본의 시각이 아닌, 그들 자체의 철학적 특성을 파악할 때 1920년대 한국근대문학의 생명주의 해석의 길도 새롭게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할 때 다이쇼 대표적 사회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였던 오스기 사카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프랑스 생명주의 철학자 베르그손의 ‘실증적 형이상학’ 즉, ‘과학적 생명주의’를 바탕으로 자신의 사상을 정립해 갔다. 이것은 다이쇼 생명주의 일반과 다른 그만의 독특한 지점일 터다. ‘베르그손과 오스기 채널’을 통해 1920년대 한국근대문학의 생명주의를 바라볼 때 생명주의의 새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