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의 소설 『철』은 ‘애니매시 위계구조(animacy hierarchy)’ 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핵심으로 삼는 생명정치의 서사다. 그 갈등은 유기체적 몸 자체에 대한 과학적 분류가 아니라, 몸이 하는 일, 또는 몸이 할 수 있는 일을 둘러싼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범주화에 기인한다. 김숨의 『철』은 산업 자본주의의 흥망성쇠를 다룬 보편사로서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지역사와 중첩시켜 리얼리즘적으로 독해될 여지를 두고 있다. 『철』의 서사가 가시화된 지역으로는 소설이 유비적으로 그려보인 산업사가 실제적으로 펼쳐진 부산이 적절해 보인다. 부산은 조선산업의 도시였고, 오늘날 커피산업으로 도시를 유지하고자 욕망한다. 부산이 커피산업의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시도한다는 것은 커피산업을 통해 도시의 인프라 자체를 재구축하겠다는 의지이며, 이는 재구축될 자리에 앞서 있던 어떤 인프라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트러블과 함께 존재하는 부산의 인프라는 몇 겹의 레이어를 지닌다. 그 레이어 내부에는 생태와 경제를 잇는 위기 시대의 관계적 인프라로서 ‘재첩’이 있었다. 재첩잡이를 통한 생계의 양상은 ‘구제(salvage)’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서부산 주민들의 회고는 이러한 구제 활동이 다양한 크래프트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생태적-장인적 실천으로서의 크래프트는 주민들이 그들의 살아 있는 경험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며, 물질성에 환원할 수 없는 방법으로 체현과 지식 사이의 연결을 긍정한다. 그리고 크래프트는 구제를 통해 정동적 축적(affective accumulation)을 통해 어소시에이션을 만든다. 그러나 크래프트를 발동시킨 재첩이라는 커먼즈는 공단과 하굿둑이라는 산업적 인프라에 의해 붕괴되었다. 이는 정동적 관계의 붕괴다.
오늘날 공단은 다시 한번 카페로 그 모습을 바꾸어가고 있고, 부산은 ‘커피도시’로의 변신을 꿈꾼다. 산업사회의 접속력에 다름 아닌 크래프트를 전제에 둔 어소시에이션은 플랫폼화된 커피도시에서 기능적 역할에 따라 분리되고, 이에 따라 어소시에이션은 개인으로 해체되어 커피의 소비자 또는 생산자로 결정(화)된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소비자 또는 기업가적인 생산자로서의 정체성은 플랫폼 모델이 그 성공과 실패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경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