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집행유예의 선고비율이 높은 편인데, 법무연수원의 2020년 통계에 따르면 제1심 형사공판사건 처리결과 중 정기형이 26.1%, 집행유예가 34.3%로 나타났다. 피고인으로서는 아무리 유죄라고 하더라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 즉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으므로 오히려 벌금형보다 집행유예를 선호하는 형벌의 부조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고, 범죄경력이 별다른 의미 없는 부유층들에게는 면죄부와 같은 기능을 하므로 사회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집행유예 제도는 보호관찰의 부과를 임의규정으로 두고 있으므로 단순집행유예의 경우 그야말로 ‘유죄의 선언’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강제력 있는 조건으로 두지 않고 있으므로 피해자로서는 별도로 민사재판을 진행하거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원외(院外) 합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우리 형법에는 일부 집행유예 및 벌금형을 병과할 수 있는 일반규정이 없으므로 법원으로서는 각 사안에 적합한 형사처벌을 부과할 수 있는 재량권도 제한된다.
반면 우리나라의 집행유예와 유사한 미국의 probation의 경우, (1) 본형(本刑)을 유예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제3의 선고형으로서 법원이 부과한 준수사항을 지키지 않을 경우 즉시 취소되고 새로운 형벌이 선고된다는 점, (2) 필요적 준수사항으로 피해자 배상을 규정하고 있어 피해 회복이 직·간접적으로 강제된다는 점, (3) 법원은 probation과 함께 벌금을 병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4) 일부 주의 경우 형을 분리하여 일부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는 등 법원에게 폭넓은 재량권이 부여된다는 점, (5) probation 대상자에 대해서는 영장 없는 압수수색을 비롯하여 광범위한 감독과 통제가 이루어진다는 점 등에 비춰 여러모로 진정한 의미의 ‘사회 내 구금’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현대국가가 사형(私刑)을 금지하고 개인의 형벌권을 빼앗아 독점하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집행유예를 법원의 시혜적인 행위로 볼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은 probation 제도의 장점을 계수함으로써 사법정의를 고양하고 형사처벌의 실질화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