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야마다 비묘의 ‘띄어쓰기’의 의도와 문학사적 의의 등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비묘는 한 글자 내지 한 구절을 음절의 단위로 쓰는 경우에도 간격을 두고 써서, 서양시의 모습을 모방하고 낭송의 효과를 거두려 하였다. 그것을 실천한 구체적인 것이 청년창가집이다. 비묘의 시는 ‘시도’였다는 데 의의가 있고, 그리고 그의 실패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비묘의 추종자에 이와노 호메이가 있어 비묘의 ‘시도’가 반드시 헛수고는 아니었다고 그 의의를 인정할 수 있다. 즉 비묘의 ‘띄어쓰기’의 서양 문체모방에 대한 도전은 호메이에게 이어짐으로써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시인 등에게 널리 계승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어 ‘띄어쓰기’는 역시 소수파(마이너리티)라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비묘와 호메이가 그 효과를 명료하게 찾지 못한 반면 추야는 시각 중시, 독자의 템포 변경을 의도해 성공시킨 시인이자 띄어쓰기 계승자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을 고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