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근대 국제법 관념의 도입과 관련한 연구의 일환으로, 1866년 병인박해를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병인양요의 경과를 프랑스 측 기록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병인양요는 우리나라와 서양 국가 사이에 벌어진 최초의 전쟁으로, 조선이 제국주의 서양 국가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례이다. 병인양요는 중국 소재 프랑스 함대사령부에 의하여 두 차례의 조선 원정으로 구체화 되었는데, 제1차 원정에서 프랑스는 한강 하구 등 조선의 해양 지리를 탐색하는 과정 중 한강 양화진까지 진격하였다가 철수하였고, 제2차 원정에서는 강화도에 상륙하여 강화부 및 외규장각을 약탈하고 철군하였다.
이러한 병인양요의 내용을 검토한 후 그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국제법적 문제들을 이글에서 간략히 살펴보았다. 먼저 병인양요는 1866년에 발생한 사건이므로, 국제법상 시제법의 원리에 입각하여 검토하여야 함을 적시하였다. 이어서 프랑스와 조선이 독립국가로서 대등한 국제법 주체로 여겨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조선의 법적 지위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당시의 프랑스와 청은 모두 조선이 내치에 대하여 자치권을 갖는 독립된 국가로서 병인박해와 관련하여 국제법 주체로서 책임을 질 수 있는 국제법 주체임을 명확하게 인정하였다. 프랑스가 19세기에 해외 진출을 함에 있어서 선교의 자유를 중요시한 이유와 선교의 자유에 관한 프랑스의 태도가 중국 및 조선에 어떻게 국제법적으로 반영되는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프랑스 정부가 해외 자국민에 대한 보호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졌는지와 당시의 국제법상 어떠한 방법으로 보호하는 것이 가능하였는지도 간략히 살펴보았다. 프랑스가 조선에 군사적 원정을 행함에 있어서 당시의 전쟁법 규칙을 준수하였는지에 대하여서 검토하였다. 마지막으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상륙하여 외규장각에서 약탈하여 간 도서와 관련한 법적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