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고유의 정서로서의 한(恨)은 원(怨)이 아니라는 인식은 논쟁의 산물이다. 본고에서는 한의 서사로 정의될 수 있는 이청준의 〈남도 사람〉 연작과 한승원의 〈한〉 연작을 대상으로, 한국적 한의 주체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형상화 양상에 주목하고 그 주체성의 한계를 살펴봄으로써 ‘원한을 넘어선 한’으로 파악된 민족적 감정으로서의 한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했다.
한승원의 〈한〉 연작에서 그려지는 우리네 어머니는 모성애의 실천으로만 한풀이를 모색해야 하는 여성주체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희생양인 그들의 한은 민족과 민중의 저항적 에너지로 전환되지 못한다. 이청준의 〈남도 사람〉 연작에서 그려지는 미적 주체인 소리꾼 오누이는 가해자를 용서해야만 민족예술의 창조자로서 특별한 미적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소리꾼은 민족사적 비극과 접점을 확보하지 못하는 비역사적 예술주체로 한정된다. 원과 한의 배타적 관계를 지양하고 ‘원한을 넘어선 한’이라는 도식으로 고착화된 민족적 한에 대한 상상력을 갱신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창조력의 원천으로서의 한의 재발견은 요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