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조선 후기 여성 한시와 『시경』’이라는 주제 하에 (1)여성의 한시 창작에 대한 정당화 논거로 『시경』이 활용된 맥락을 살피고, (2)『시경』이 여성 한시 창작에 구체적으로 반영된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조선 후기 여성들이 지은 시경체 한시를 분석해 보았다.
여성의 한시 창작과 시집편찬은 16세기 중엽 이후 점점 본격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따라 그 정당화의 필요성 또한 함께 증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대부 남성의 한문학’이 주류이던 시대에 여성의 한시 창작은 ‘부덕(婦德)’이라는 가치를 통해 정당화되곤 했다. 사대부 남성들은 『시경』의 「주남」·「소남」에도 현숙한 부인들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논거 삼아, 부덕을 갖춘 여인이 「주남」·「소남」의 유풍을 계승한 시를 짓는 것은 괜찮다는 논리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처럼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윤리 덕목인 부덕을 통해 여성의 한시 창작을 정당화하려는 논리는, 여항시집 및 국문시가집의 편찬이 『시경』을 통해 옹호될 때 천기론과 결합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면모였다고 할 만하다.
조선 후기 여성에 의해 창작된 시경체 한시로는 안동 장씨의 〈학발(鶴髮)〉, 김삼의당의 〈송형우귀(送兄于歸)〉, 강정일당의 〈탄원(坦園)〉 세 작품이 주목된다. 안동 장씨는 행역(行役)으로 인한 가족의 이산이라는 소재를 다루되, 모자 관계에만 초점을 맞춘 작품을 창작했다. 김삼의당은 여성의 결혼이라는 소재를 다루되,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이 결혼에 대해 지니는 복잡한 내면에도 주목하는 작품을 지었다. 강정일당은 4언 연장체 형식을 원용하되 첩영체 형식은 취하지 않음으로써 작품에 전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여기에 남편의 이야기를 소재로 채워 넣어, 산림학자풍의 시를 지었다. 이들은 모두 『시경』이라는 고대의 문학 전통과 자기의 구체적인 삶의 경험을 결합시킴으로써 일정한 시적 성취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