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발표된 량치차오의 논설 「멸국신법론」은 대한제국의 국가적 위기가 가속된 1906년부터 1907년에 걸쳐 여러 매체에 누차 번역 소개되었다. 이 글에서는 그중 최초로 「멸국신법론」의 번역을 시도한 『조양보』, 그리고 「멸국신법론」을 『월남망국사』의 부록으로 처음 배치한 현채의 판본에 주목하여 번역 주체와 매체가 창출하는 변주 양상 및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원문 「멸국신법론」의 주된 내용은 이집트, 폴란드, 인도, 보어, 필리핀에 대한 열강의 교묘한 식민지화 전략에 관한 것이다. 『조양보』에서는 「멸국신법론」의 이러한 망국 사례들 가운데 자국인 ‘배신자’들을 서술한 부분에 강조점을 첨가하여 대한제국기의 친일파 세력을 우회적으로 비판하였다. 현채는 판보이쩌우와 량치차오가 공동으로 편찬한 1905년의 『월남망국사』를 번역 출판하는 과정에서 저본에는 없던 「멸국신법론」을 부록으로 삽입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월남망국사』에서 개진된 베트남 독립지사들의 비극은 축소하고, 대신 제국에 의한 자본의 잠식을 경계하는 「멸국신법론」의 전략적 측면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는 급진적인 정치색을 지녔던 1901년도의 량치차오 텍스트로써 원문 『월남망국사』의 보수성을 상쇄하는 효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대한제국기 전반의 량치차오 수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