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본고는 동아시아에서 다양한 단어들로 옮겨 온 독일어 단어 외펜틀리히카이트 Öffentlichkeit 의 번역어들을 고찰하고 새로운 번역어 공술계(共述界)를 제안한다. Öffentlichkeit라는 단어 자체부터가 문화들 사이에서 번역되고 사회가 변할 때마다 끊임없이 의미의 변동을 겪었으며 이에 상호문화적 특성을 보여준다. 동아시아에서는 공동의 것과 개인의 것을 공(公)과 사(私)라는 단어로 나누는 전통적, 유교적인 개념쌍 때문에 이 단어가 주로 공(公)이라는 글자와의 합성어를 통해 손쉽게 수용되었다. 하지만 이 간단한 수용은 서구어에서의 의미와 배경을 제대로 성찰할 수 없게 방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동아시아의 공이라는 단어에는 공식적, 국가적인 것을 가리키는 의미가 강하다는 점, 공이 사보다 앞선 것으로 강조되는 점 때문에 공동의 것과 개인적인 것이 균형을 이루는 관계를 형성한 서구 근대 부르주아 사회에서의 Öffentlichkeit의 의미가 가려진다. 또한 기존 번역어는 문어 위주의 근대 문학의 개념에 집착해 인간의 문화 저변에 놓인 소통에 대한 성찰도 놓치고 있다. 이에 본고는 먼저 근대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하버마스의 이론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비판적 연구인 네크트와 클루게의 마르크시즘적 문화 이론을 고찰하면서 단어의 역사적 배경과 함께 그것이 담고 있는 유토피아적인 성격을 살핀다. 나아가 오늘날 매체의 변화로 인해 생겨나는 상상적 공간들을 현실적으로 고려하면서 새로운 번역어 제안의 이유를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