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을 전후해서 발표된 실러의 시들인 「망상의 말」, 「믿음의 말씀」, 「새로운 세기의 시작」, 「독일의 위대함」에는 당시 독일의 상황에 대한 그의 반응과 대응이 잘 나타나 있다. 프랑스혁명으로 촉발된 유럽의 전쟁은 실러가 사망하기까지 계속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독일은 패전을 거듭했다. 프랑스혁명의 공포정치와 전쟁의 소용돌이는 실러의 계몽주의적 발전적 역사철학관이 역사회의주의로 바뀌는 계기가 된다. 역사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기반으로 실러는 「망상의 말」과 「믿음의 말씀」에서 인간 내면세계로 들어가 인격을 완성하고 선행으로 옮길 것을 요구한다. 「새로운 세기의 시작」에서는 국제무대에서 패권다툼을 벌이는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프랑스에 의해 굴욕을 당하는 독일을 간명하게 묘사하는 한편, 인간 내면세계의 정화인 예술과 문화에서 독일의 자존심 회복에 대한 희망을 내비친다. 미발표 초고인 「독일의 위대함」은 패전국 독일의 자부심을 고취하고자 문화민족 독일이라는 개념을 등장시킨다. 정치적 독일과 문화민족 독일을 분리해, 독일제국이 붕괴되어도 문화국가 독일은 건재해 미래적 사명을 담당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적 무력감의 문화적 과대포장임이 분명하고, 정치적, 군국주의적, 전체주의적 민족주의에 오용될 소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