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정지용의 시세계 전반을 통해 반복적으로 표출되는 ‘비애’의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고 그것이 그의 시세계 전반을 통해 어떻게 변용되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추적하고자 했다. 특히 그의 ‘비애’의 원천으로 작용한다고 보이는 가난과 식민지의 문제에 집중하고자 했는데, 그 이유는 이런 문제들이 다만 그의 비애라는 감정을 형성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적 표현의 문제는 물론 시적 대상을 바라보는 문학관 혹은 세계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비애의 감정이 정지용에게 얼마나 근원적인 감정이었던가를 종교시를 통해 살펴보고, 그 비애의 원천을 그의 시와 산문을 통해 추적했다. 정지용의 비애의 원천으로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가난의 문제였다. 가난으로 인한 슬픔이나 설움은 정지용의 유학시절과 이후 생활인으로서의 시에서도 나타나는 중요한 감정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난과 함께 정지용의 비애의 원천에 놓이는 또 다른 문제가 바로 식민지의 문제였다. 그리고 이 식민지의 문제는 가난으로 인한 비애와는 또 다른 성격의 비애를 형성시킨다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식민지 문제로 인한 비애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집단적이거나 민족적인 그것으로 확장될 여지를 가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3장에서는 비애의 감정이 정지용의 시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그의 비애의 원천인 ‘가난’의 문제는 슬픔과 설움이라는 비애의 감정을 유발하는데, 정지용은 이런 감정들을 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그것을 감각적 표현들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정지용의 시적 감각이 비애의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확보하거나 그것을 견디는 방법으로 고안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었다. 한편 비애의 또 다른 원천이었던 식민지의 문제는 주로 정지용의 후기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정지용 후기시에서 비애의 감정은 가난으로 인한 슬픔과 설움과는 다소 다른 질감을 가진 시름이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었는데, 이 시름의 감정은 다만 개인적인 차원의 감정으로 국한되지 않고 ‘국토와 인민’이라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대상에 대한 감정으로까지 확장된 비애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식민지적 자의식이 작동한 결과 형성된 시름이라는 것은 정지용 후기시 세계를 은일이나 초월과 같은 관념적 세계로 국한하지 않고 다채로운 상황과 형상을 시에 수용할 수 있도록 추동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지용은 피폐한 식민지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순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국토와 그 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식민지인의 형상을 발견하고 시화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