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은 1973년 「어둠의 혼」을 발표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분단문학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어둠의 혼」이 분단문학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는 1970년대 한국의 정치사회적인 상황성이 큰 영향을 미쳤다. 좌익 이데올로그 아버지의 죽음과 그 가족들의 수난사를 내용으로 하는 「어둠의 혼」은 7·4남북공동성명과 유신 헌법 제정 등 1970년대 초반 한국의 정치사회적 변동 속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를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둠의 혼」에 대한 당대 평단의 우호적인 반응과 이후의 문학사적 평가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준 것은 어린 화자에 의해 촉발되는 정서적 효과였다. 자신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어린 화자의 신뢰할 수 없는 서술이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그 이야기의 진실성을 납득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어둠의 혼」에서 촉발되는 이러한 정서적 효과가 김원일 초기소설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다양한 서술담론 실험과 뿌리 뽑힌 자들의 형상을 통해 형성되었음을 밝혔다. 작가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김원일 역시 소설을 위해 자신의 경험과 의식을 희생하는 연습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한국 분단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