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병의 자기서사에는 군 ‘위안부’의 구술 증언과 유사한 기억의 정치가 발생한다. 어떤 것을 서술하고, 어떤 것은 서술하지 않느냐는 자기서사의 행위성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와의 만남은 학병 서사에서 중요한 화소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을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한 군 ‘위안부’의 상황상 돌아온 자들의 기억 속 일본군 ‘위안부’의 흔적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고는 그동안 ‘위안부’ 서사로 읽지 않았던 텍스트들을 재독하여 ‘위안부’ 재현을 논하고자 하였다.
박순동의 수기 「모멸의 시대」는 일본군을 탈출하여 OSS 훈련을 받은 항일영웅의 모델 스토리다. 그는 전선에서 조선인 ‘위안부’를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했지만, 일본군 ‘위안부’를 박꽃으로 대상화하며 멀리서 관찰한다. 말라리아에 걸려 몸이 약해졌다는 이유로 같은 조선인 학병들에게 버림받고 혼자 남겨진 이가형은 수기 「버마전선패잔기」와 소설 『분노의 강』을 통해서 버마 전선의 기억을 서사화한다. 그는 수기와 소설에서 위안소 방문, ‘위안부’와의 만남을 상세하게 기술한다. 이는 그가 ‘위안부’, 포로감시원, 학병 등을 모두 전쟁에 동원된 희생양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가형은 ‘위안부’와 섹스를 하지 않음으로써 헤게모니적 군인되기를 거부한다. 이는 식민지 엘리트였던 그가 상징적 거세를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성장을 거부하는 것과 연결된다. 하지만 그 역시 ‘위안부’와의 만남을 낭만화하는 것은 피하지 못했다. 박순동과 이가형 모두 ‘위안부’의 행위성이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굴절된 재현에서 왜 ‘위안부’가 이야기되지 못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안부’ 서사를 아카이빙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