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 술을 맞이하는 부대의 역할은 저장 내지는 운반에 있다. 그런데 새롭게 만든 부대가 너무 크다면 많은 술을 저장할 수는 있어도 그만큼 한 번에 오염되기가 쉽고, 그 크기만큼 운반에 용이하지 않아 결국은 그 기능을 다 할 수 없게 된다. 최근 개정되어 시행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은 지나치게 큰 새 부대와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첫째, 불법촬영범죄에 있어서 법관의 재량이 지나치게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처벌하는 법정형에는 벌금형이 규정되어 있는데, 양형기준을 통해 감경하는 경우에도 최소한 징역형을 규정한 것은 이를 벗어난 판결을 하는 경우 그 이유를 따로 기재해야 하는 점에서 법관이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둘째, 위와 같은 양형기준에 의한 법원의 판단은 가해자가 공무원이라면 그에 대한 징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즉, 이미 법관의 재량이 ‘제한된’ 상태에서 1심 판결을 선고하였는데 그 결과는 공무원에 대한 징계 절차에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게다가 현행 징계기준마저도 그 기준이 모호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형을 정함에 있어서 범인의 연령이나 성행, 지능과 환경 등을 참작하도록 한 형법 제51조의 규정을 무시하고 디지털 성범죄를 범하였다고 하여 ‘무조건’ 엄벌을 해야 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양형기준이 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실질적으로’ 우위에 있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성범죄자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그들이 마땅히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단 한 번의 범죄행위가 가해자에게는 실수로 여겨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고, 많은 전과자들이 양산되는 것보다는 갱생의 기회를 주는 것이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특히 초범의 경우에는 자신의 욕구를 통제할 능력이 없다거나, 재범의 위험성이 높다고 재단할 수도 없다. 더욱이 법관의 재량을 제한하는 것은 범죄예방의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고, 범죄자의 재활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와 더불어 공무원에 대한 징계기준 역시 더욱 그 기준이 명확하게 규정될 필요가 있다. 현행과 같은 ‘비위의 정도’나 ‘고의’ 또는 ‘과실’의 정도는 세분화된 디지털 성범죄 유형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 이는 결과적으로 징계권자의 자의적인 재량 행사를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가해행위와 책임에 비례하는 명확한 새로운 기준이 설정될 필요가 있다. 즉 불법의 경중 및 행위의 태양에 따른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기준이다. 구체적으로 불법성이 강한 범죄유형의 경우 징계권자의 재량의 범위를 축소하고, 불법성이 경한 범죄유형의 경우 징계권자의 재량의 범위를 다소 넓게 부여하는 것이다. 특히,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초범이면서 1죄의 경우에는 마지막 한 번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비례의 원칙에도 부합한다고 하겠다.
다만, 재범자 등에 대해서는 엄벌할 필요가 있다. 통상적으로 실형을 선고받더라도 양형기준의 권고형에 미치지 못하는 형을 선고받는 경우와 같이 ‘선처’의 범위를 조금 더 넓혀서 본다면,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이 재범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개전의 정상이 보여 결정한 검찰이나 법원의 선처를 퇴색시키는 결과와 같다.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행위자에 대한 처벌은 그 책임에 비례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행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과 징계기준은 변화의 기점에 서 있다고 본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