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목적은 가족 담론 시조들의 가집 수록 양상을 검토해 전승 맥락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그간 가족 담론 시조들에 대한 연구는 가족의 윤리를 노래한 교훈시조, 다채로운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 사설시조라는 두 가지 계열로 나뉘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하였다. 이제는 이러한 가족 담론 시조들을 하나로 통합해 통시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들의 가집 수록 양상을 시조예술사적 관점에서 검토할 때 가곡문화공간에서 변화하는 가족 담론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16~17세기에 창작된 가족 윤리 시조의 대다수는 가집에 수록되지 못했고, 수록되었다 하더라도 19세기 후반까지 널리 전승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철의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는 개인 문집이나 소수의 가집에만 수록되었다. 이 작품들은 ‘즐길 거리’가 아닌 ‘교화’라는 목적성을 갖고 생성되었기 때문에 다수의 가곡 애호 공간에서 ‘가곡의 예술적 미감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사설’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족 윤리 시조는 16~17세기 주로 향촌 사회에서 일반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가비(歌婢)와 가동(歌童)을 시켜 부르게 했던 작품이다. 이러한 노랫말은 18세기 프로페셔널한 가곡 향유의 장에서 사대부들이 즐기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18~19세기 가곡 향유 공간에서 가족 윤리 시조들을 대신하여 창자와 청자의 선택을 받은 시조는 가족 내 관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그려내거나 억눌린 욕망을 발산한 작품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평시조가 아닌 사설시조이며 가장의 권위, 유가적 이상, 고부 및 처첩 관계 등 당대 가족제도와 관련한 흥미로운 장면들을 연출하였다. 이 사설시조들은 작품에 따라 19세기 후반까지 광범위하게 전승되기도 하고 19세기 초반 이후로는 연행 현장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가족 담론 사설시조의 전승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랫말 변개 양상, 가곡의 주 향유층인 사대부들의 지향의식, 혼인 과정과 시집살이의 역사적 변천 등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