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20세기 초, 고전문학 장르 중에서 문학사적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 것이 활자본 고소설이다. 그러기에 활자본 고소설을 과거의 유산이면서 당시 살아서 활약하는 근대적인 문학으로 파악하고 그 속에서 서구식 근대성이 아닌 또 다른 ‘복수의 근대성’을 찾아야 한다. 활자본 고소설의 매체적 특성이나 유통방식의 문제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도 당시에 활자본 고소설을 수용했던 대중들의 인식체계와 미학적 관점에서의 규명이 필요하다.
활자본 고소설의 대폭적인 수용에 다른 인식과 미학적 관점은 김기진 등 당시 여러 논자들도 지적했듯이 ‘대중성’과 ‘통속성’으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대중성’과 ‘통속성’은 식민지 엘리트 작가들이 규정했던 저속한 흥미에 영합하는 대중추수주의가 아니라 염상섭이 강조한 ‘민중성’이나 ‘민주주의 정신’으로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활자본 고소설의 전폭적인 수용은 ‘복수의 근대성’의 관점에서 수용층이 또 다른 경로를 통해 근대문화를 구축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 선구적인 작품이 활자본 고소설의 시대를 열었던 이해조의 판소리 개작소설 〈옥중화〉다. 〈옥중화〉는 식민지 시대에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이름이 높았다. 무엇보다도 만남-사랑-이별-수난-재회를 관통하는 대중서사 방식의 연애담이 대중들에게 흥미를 주었지만, 그 속에는 당대 대중들이 요구하는 근대적 인식과 미학이 내재해 있었다. 그것은 상호존중과 신뢰에 바탕을 둔 새로운 애정윤리로 근대화의 격랑 속에서 전통의 관점에서 청춘남녀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의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