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의 저본으로서 7세기 전쟁을 이해하는 토대가 된 『김유신행록』의 찬술 배경과 경위를 탐구한 것이다.
혜공왕 즉위 후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한 업적을 내세워 무열왕과 문무왕을 不遷之主로 삼음으로써 이들의 권위를 통해 어린 국왕의 입지를 보강하고자 하였다. 이에 7세기 전쟁의 결과는 백제의 병합에서 ‘兩國平定’으로 재인식되었다. 이 조치는 특히 문무왕을 부각시키는 한편 김유신의 권위를 떨어뜨렸다. 김유신 사후 입지가 줄어들던 후손들은 이 조치로 더욱 타격을 받았고, 모반에도 연루되면서 몰락하였다.
그런데 무열왕계가 단절되고 원성왕이 즉위하면서 김유신 후손들은 반전의 기회를 맞았다. 김유신의 玄孫 長淸(金巖)은 그를 7세기 전쟁의 주역으로 평가하는 行錄을 찬술하였고, 하대 왕실은 무열왕계의 권위를 삭감시키는 방안으로 김유신을 현창하였다. 그리고 ‘양국평정’은 체제 이념으로 수용되면서 ‘一統三國’으로 확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