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순자의 본성[性]과 인위[僞]의 관계를 아리스토텔레스의 퓌시스와 노모스의 관계를 통해 재조명함으로써 순자의 성악설을 재고찰하려는 시도이다. 순자가 활동했던 전국(戰國) 시대에 인간의 도덕성에 관한 논의는 ‘본성론’ 의 맥락에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 고대에서 인간의 본성을 선이나 악으로 규정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도덕성의 출발점과 작동 방식을 규명함으로써 이로부터 도덕적 이상사회를 실현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로는 순자의 이론적 지향을 충분히 드러내기 어렵다. 순자 본성론의 초점을 ‘악’에 둘 경우 순자 철학 안에서 도덕성의 토대로서 본성과 인위의 긴장 관계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본성이 근본적으로 악하다면 선으로서의 인위는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일관성 있게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과 마찬가지로 고대 그리스에서도 인간의 도덕적 가능성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고대 중국과 달리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본성을 선이나 악에 귀속시키지 않고 본성과 인위의 관계를 통해 도덕적 이상 사회에 관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자연성에 대해 현실적으로 접근하면서도 정치 제도나 법률과 같은 인위의 도움이 없이는 인간의 본성을 실현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인위는 자연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자연으로서의 퓌시스와 인위로서의 노모스의 관계를 통해 도덕적 이상 사회를 논의했던 것이다. 이때 아리스토텔레스의 퓌시스와 노모스의 관계는 순자의 본성론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참조점이 될 수 있다. 순자에게도 유사한 이론적 구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자의 본성은 본래 악으로 흐를 수 있는 경향성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진 고유의 능력인 ‘변별 능력’과 ‘자연적 감정’까지도 포함이 되는데, 이러한 능력은 도덕적 사회의 기초를 마련하는 토대이다. 또 예의는 이 생득적 능력을 도덕으로 향하도록 안내해주는 역할을 한다. 즉, 순자에게서도 자연과 인위는 협력하는 관계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퓌시스)과 인위(노모스)의 관계는 순자에서 본성[性]과 인위[僞]의 관계를 모순 없이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제안이 될 수 있다. 이에 이 논문에서는 순자에서 본성의 이중성에 대해 분석한 뒤 이를 바탕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퓌시스와 노모스의 관계와 상응하는 측면을 고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