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서 20세기 초는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인해 중국에 서양인이 유입되어 이들에 의해 편찬된 중국 어학, 문화 저서, 문학작품 번역서가 서양에 소개되고, 이를 기반으로 중국학의 기초가 만들어지는 이른바 ‘문명사적 전환’을 이룬 시기이다. 외교관, 선교사, 세관, 상인, 작가 등 중국인과 정치, 경제, 종교 등의 목적으로 교류할 필요성에 직면한 서양인은 중국어 회화, 독해, 어법 등 교재와 각종 사전 편찬에 몰두하였으며, 이들에 의해 중국 각지 방언, 관화 등 방대한 양의 교재가 탄생되었다. 1860년 북경조약 체결로 인해 외국인의 북경으로의 왕래가 자유로워지면서 서양인들은 북경관화의 중요성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으며, 당시 영국의 외교관 토마스 웨이드(Thomas Wade)는 북경관화 교재인 語言自邇集(1867)를 편찬하였다. 語言自邇集은 19세기 북경관화의 음운 체계, 발음 방법, 표기 방식, 어휘, 어법 특징 등을 총망라한 교재로, 중국어 교재 편찬사에 있어 큰 획을 남겼다. 1871년 日淸修好條規를 조인하는 과정에서 청나라와의 외교 교섭에 ‘북경관화’ 교육의 필요성을 통감한 일본은 동경 외국어학교에 북경인 교사를 초빙하고, 語言自邇集을 교재로 채택하여 중국어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또한 1879년 일본의 중국어학자 히로베 세이(廣部精)는 亞細亞言語集: 支那官話部라는 이름으로 語言自邇集의 번역서를 편찬하였다. 특히 亞細亞言語集에 정리된 북경음 음절표인 「평측편」은 당시 북경관화의 음운 체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으로, 이 체제를 모방한 自邇集平仄編四聲聯珠(1886), 華語跬步(1886), 日漢英語言合壁(1888) 등과 같은 저서가 잇달아 나왔다. 본 연구는 일본의 중국어교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 語言自邇集의 「TONE EXERCISES」의 번역인 亞細亞言語集의 「平仄編」에 나타난 발음 표기를 분석하고, 후대 일본인이 편찬한 중국어사전인 北京正音 支那新字典(1905), 標準支那語字典(1926), 井上支那語辞典 (1932) 안의 가타카나 표기 양상을 고찰하고 이를 통해 북경관화의 음운의 변천사를 밝히고자 하였다. 亞細亞言語集에서는 유기음과 무기음 성모 표기가 구별되지 않고, ŋ운미 표기에 통일성이 없는 등 표기에 한계가 존재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편찬된 중국어사전에서는 일본어에 없는 유기음과 무기음 성모의 대립을 나타내는 추가적인 부호를 쓰고, 가타카나 상단에 점 두 개를 첨가하여 y음을 나타내는 등 새로운 표기법을 시도했고, x와 ɛ가 결합할 때 ヘ, ŋ운미를 ‘ン+グ’로 썼으며, ə운모를 나타내기 위해 ォ̂, ェ̂와 같은 첨자를 부가하는 등 북경관화음에 더 가깝게 표기하기 위해 亞細亞에 사용되지 않는 가타카나나 새롭게 만들어내 가타카나를 사용하였다. 또한, 표기 분석을 통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북경관화에서 영성모와 o운모가 결합할 때 ɤ로 변화하며 iai, io, yo운모가 소실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