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이미륵 망명문학에 실정성(Positivität,實情性)을 부여하고, 이를 위해 그의 독일 체류 시기의 문학 활동에 주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미륵은 독일에서 독일어로 글을 창작한 최초의 한국인이자, 망명 이후 유럽에서 조선의 해방을 위해 노력한 독립운동가이다. 동시에 그는 독일 내에 체류했던 조선인들과는 다른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조선인과 달리 이미륵은 유학생이 아닌 망명자의 신분으로 독일행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경성제대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이내 독일에서 동물학으로 전공을 변경하였고, 독일 내의 반나치주의자, 백장미파(weiße Rose)의 구성원과도 긴밀히 교류하면서 월요문인회를 창설하는 등 적극적인 독일 생활을 개진하였다. 이미륵의 독일 내 활동을 보면 그가 해방 후 귀국을 실질적으로 추진했다는 근거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미륵의 문학은 그간 이주자로서의 향수를 담은 작품으로 독해되거나 독일에 한국을 알린 문화전도사의 역할로 다소 한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미륵 연구에서 규명되지 않은 물음 역시 ‘왜 다른 나라가 아닌 독일로 갔는가’와 ‘왜 해방 후에 귀국하지 않았는가’에 관한 것이다. 해당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조선-독일의 관계, 이미륵의 독일 생활과 유럽에 대한 동경, 그리고 독일에서 유지하고자 했던 긍정적 삶의 철학을 재조명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이 연구에서는 그가 독일에서 ‘의식적 코스모폴리탄 혹은 의식적 무국적자’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삶을 재구성한 흔적을 상상해보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의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순수) 증여의 장면’, ‘차별에 대응하는 인물’을 조명하여 이미륵 망명생활의 적극성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미륵에게 독일이 더 이상 정치적 망명지(politisches Asyl)로만 머무르지 않을 때, 그의 문학은 독특한 위상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는 식민지 시기 조선의 작가들이 꿈꿨던 세계문학의 실현 가능성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